
단편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 트위터에서 한참 핫할(?) 때 체크해 뒀다가 이제야 빌려서 읽었다.
사실 보는 내리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첫 단편인 <하긴>부터 마음이 자꾸만 불편했다. 읽어내려 가는 동안 갑갑함이, 속이 울렁거리는 그 느낌이 나를 지배하다가 "그런 내 짝으로서의 딸, 내 딸의 자격, 나의 딸감."이라는 문장에서 펑 터졌다. 이거였다. 화자의 시선에서 느껴지던 것들이 이 한 문장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이후로도 이어지는 소설들은 그렇게 노골적인 시선이 녹아 있다. 어느 순간에는 화자의 시선으로, 어느 순간에는 화자를 비난하는 인터넷 속 댓글들로, 어느 순간에는 화자를 공격하는 주변 인물의 행동으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것들은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이기도 하다.



<여자가 지하철 할 때>. 제목의 '지하철 할 때'라는 말이 이 모든 것을 어우르는 말처럼 느껴졌다. 자신에게 올 수 있는 미지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진이 지하철에서 행하는 모든 행동이 곧 '지하철하는' 행동이다. 얼굴들로 분리된 수진의 자아가 수진과 20분 동안 계속 싸운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 시간 동안 내리.
솔직히 이 단편을 읽으면서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공감이 되더라. 꼭 지하철이 아니더라도, 이런 과정을 겪은 적이 있으니까. 늦은 밤에 걸을 때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돌아볼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택시 기사와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하고 먼저 내린 사촌 언니가 조금 뒤에 나한테 혹시나 자기 때문에 내가 불쾌한 일을 당했을까 걱정하던 문자를 보냈을 때, 언니도 이런 과정을 거쳤을지 모른다.



이건 문장이 너무 좋아서. 상처가 된 말을 부수는 것도, 자신이 쓴 소설을 박살내는 것도 알이 굵고 건강한 이빨이다. 단순히 비유여도 좋고, 실제로 어떤 말을 해서 꼭꼭 씹어 뱉은 거라고 생각해도 좋더라. 말도 문장도 자신이 꼭꼭 씹어 다른 무언가로 소화해내는 과정인 것처럼 보여서.
사실 편하게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거랑 별개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서 그런가 괜히 더 곱씹게 되는 부분들도 있고. 언젠가 기억이 희미해질 때면 또 다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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