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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날의 독서

그날 광주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소년이 온다>

by 별날(byeolnal) 2025. 5. 25.

 

광주의 그날 이야기를 담은 <소년이 온다>. 각오하고 읽었는데 정말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아프더라. 트위터에서였나, 유독 <소년이 온다>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다 울어 있다고 하던데, 내가 빌린 책도 그랬다. 책의 아랫부분이 여기저기 울어 있는 걸 보며, 다들 울고 눈물 젖은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는 게 느껴졌다. 나 역시 그랬듯이.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들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 3장 일곱 개의 뺨 99-103p.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수많은 이를 동시에 잃은 그날 광주의 사람들이 모두 이런 감정이었겠지.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한동안 그 순간에 매몰되어 살았던 적이 있다. 장례식을 치른 나도 그런 시기를 보냈는데 장례식은커녕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이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통받아야 할까.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던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장례를 치르지 못해 온몸이 곧 사원이 되었다는 말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른다.

 

 

 

그때 그 자리에 한도 끝도 없이 쌓인 시체들이, 아니, 사람들이, 아니, 혼들이 과연 몇이었을까. 총알과 총과 곤봉과 모든 것에 짓이겨져 버린 것은 몸이었을까, 혼이었을까. 그렇게 불타 버린 시신들이 지금은 유가족에게 돌아갔을까. 그림자로만 함께 했던 이들은 지금은 어디에선가 안식을 얻었을까. 아무도 답해 줄 수 없는 질문만 튀어나온다.

 

 

 

 

왜 이렇게 선과 악은 극명할까. 왜 어떤 인간은 마지막의 마지막에조차 존엄을 유지하고, 어떤 인간은 그런 순간에조차 잔인해지는가. 무엇이 이 차이를 낳을까. 쏘지 않은 그들이 누군가를 죽일 용기가 없었던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런 용기가 과연 필요할까 싶다. 끝까지 인간이기를, 존엄하기를 선택한 이들을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었음에도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는 것만 같다. 과연 내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계엄이라는 역사가 반복되는 현재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계엄을 겪은 그날 밤, 그리고 탄핵까지 약 4달 동안 내가 느낀 감정을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을 느꼈다. 너무나 거대한 악을 앞에 둔 것만 같은 기분, 내가 너무나 무력하고 작은 존재가 된 것만 같은 기분.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들 사이에, 누군가는 존엄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가슴이 꽉 막혀서 숨조차 쉬기가 어렵다. 왜 이런 고통스러운 역사가 반복되어야 할까. 우리는 과연 그때보다 더 나아갔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